▶ 책 제목
유리의 살의
▶ 작가
아카요시 리카코
▶ 책 정보
무차별 살인범 고다에게 부모님을 잃고 도망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고차뇌기능장애(간헐적 기억상실)에 걸린 카시하라 마유코.
그리고 그녀와 20년을 같이 살아왔으며 그녀의 병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가해자이자 남편인 카시하라 미츠하루.
주변 이웃들의 시선에서 보기엔 그들은 아주 행복하기 그지없는 병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부부였다.
그러나 어느날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되는데..
-----무슨 일이시죠?
"저기."
-----사건인가요?
"저기. 제가요."
-----괜찮으세요? 전화 거신 분. 위치가 어떻게 되나요?
"사람을, 죽였어요."
▶ 리뷰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예전같지가 않다면 혹여 치매에 걸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항상 우리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은 이렇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못볼꼴을 보이기 싫으니 빠르게 입원이나 시켜"
필자도 그랬고 보통사람들은 설마 나에게 그런일이 일어나겠어라며 그러한 절망적인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이 책 유리의 살의는 기억장애를 가진 환자와 그 간병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노골적이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일이라는 사실을 가슴 한구석에 깊게 박아넣는다. 중간에 나오는 여성 경관의 잔혹하고도 끔찍한 간병의 사실적인 묘사는 주변에서 간병에 대해 힘들었던 지인을 아는 필자에게는 너무나 읽기 힘들어지는 대목이였다.
스토리 면에서는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답답하고 진행이안되는 소설이다. 왜냐고? 피의자를 신문해야하는데 이 잔혹한 살인범은 10초전의 일을 까먹는다. 아니, 까먹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신문을 진행하던 도중 자신이 경관인 줄 알거나 초면인 죄수와는 공범인 줄 아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모습을 보다보면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헛웃음이 나오게된다.
내 기억은 유리같아.
분명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이지 않아.
19년이 흐르는 동안 남편과 함께 쌓아온 게 있을 텐데.
그리고, 살의조차.
스토리가 진행되며 우리는 주인공에 대한 답답함과 함께 그녀의 남편인 미츠하루에 대한 위화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왜 남편은 아내를 자수시키려고만 하는 걸까? 그리고 과거를 쌓아올리지 못하는 아내와 19년을 과연 불화 없이 행복하게만 지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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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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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범인의 정체는 중후반부터 유추가 된다. 남편의 행동에 대한 위화감보다 주인공에게 물심양면 헌신하려는 히사에가 어떻게봐서도 수상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유코의 기억 플래시백으로 인해 진범이 밝혀지고 남편인 미츠하루의 진실이 밝혀지는 대목은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책에 대하여 길게 리뷰를 작성하는 이유는 단 하나 엔딩의 한 대목에서 느낀 엄청난 감동의 파도로 인해서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과 마유코는 그녀가 좋아하던 해변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나, 끝에 와서도 그녀의 기억장애는 멈추지 않는다.
과거는 세월만큼 쌓일 텐데, 나한테는 보이지 않아. 보고 듣자마자 다 무너져 내리고 말아.
그...... 마치 유리 같아. 내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 없어.
유리라.... 당신, 전에도 똑같은 말 하고 운 적이 있어.
그리고 난 이렇게 대답했지. 안 보일 뿐이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라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어.
태양 빛이든 바람이든, 보이지 않잖아?
하지만 그 온기나 상쾌함은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당신 기억이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 당신안에 존재하고 있는거야.
스테인드글라스....
색이 칠해져 있으면 유리라도 볼 수 있어.
당신이 내 기억을 색칠해준 거야.
당신을 통해서 나는 오늘까지 살아온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던 거야.
필자는 겹겹이 쌓아올렸으나 텅 비어있는 유리를 바라보던 마유코가 자신의 남편이 멋지게 조각해준 스테인드글라스의 성 위에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서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단어였을까?
이랬기에 씁쓸한 마지막의 결말은 너무나 허망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 개인 평점 : ★ ★ ★ ★ ☆